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어린이용 소설책을 한 권 읽었는데 한동안은 거기에 완전히 빠져 살았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런 내용이었다. 해커로 활동하던 한 아이의 컴퓨터에 어느 날 인공지능이 말을 걸어왔다. 자신을 추적하던 나쁜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던 중이었는데, 우연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주인공을 보고 찾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친구가 된 아이와 인공지능은 거대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하며 우정을 쌓아나간다.

이 소설의 영향이었을까. 난 그 이후로도 같이 대화하며 친구 같은 AI를 만드는데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챗봇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해왔다. 기술적 거품을 뜻하는 대표적인 상징이 되기도 했다. 2016년에 페이스북이 챗봇을 밀기 시작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 AI 스피커 역시 마찬가지다. 2014년 아마존 알렉사가 출시되면서 모두들 개인비서가 새로운 미래라고 칭송했다. 한국에서도 KT, SKT,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제품을 출시했다. 하지만 현재는 다들 명맥만 이어갈 정도로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왜 대화 AI가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대화라는게 가장 고차원적인 지능이기 때문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인식하는 것은 우리 뇌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기술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들도 비슷한 과정을 수행한다. 반면에 언어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이다. 또한 대화에는 추론이나 기억 등의 복잡한 지능이 필수적으로 포함된다.

현재까지 대화 AI를 구현하는 방법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먼저 사람이 질문과 대답을 미리 작성해놓는다. 새로운 질문이 들어오면 기존 데이터를 검색하여 적절한 대답을 찾는다. 그후 거기에 맞는 기능들을 실행하고(DB 호출, 지식 검색, API 연동 등) 그 결과를 취합하여 대답을 한다. 이렇게 하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다. 사람이 미리 설계해놓은 범위를 벗어날 수가 없다. 확장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에 챗봇의 성능이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이전에 했던 말의 문맥을 파악하지도 못해서 기계적이고 바보처럼 보이곤 한다.

얼마 전 OpenAI에서 ChatGPT를 무료로 공개했다. 출시하자마자 전세계에서 엄청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동안은 딥러닝을 챗봇의 특정 기능에만 부분적으로 도입했다. 반면에 ChatGPT는 입력부터 출력까지 모든 과정이 다 딥러닝으로 돌아간다. 그만큼 사람의 개입이 최소화된 것이다. 덕분에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없이 대답할 정도로 똑똑해졌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이처럼 얼마만큼 사람의 역할을 줄이느냐가 가장 중요질 것이다.

물론 아이언맨의 자비스나, Her의 사만다 수준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그래도 상당히 쓸만한 대화 AI는 곧 등장할 것이다. 빠르면 내년 초에도 가능할 듯 싶다. 키보드, 마우스, 터치에 이어 이제는 대화 인터페이스의 시대가 되었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거의 모든 의사소통이 대화로 바뀔 것이다. 영화에서 나온 인공지능처럼 말이다.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상상이 현실이 되고 있다. 큰 변화에는 항상 기회가 따른다. 나도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